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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끄적끄적

소설) 어둠속의 그림자

by v아이네스v 2016. 6. 13.

제목 : 어둠속의 그림자


작가 : 아이네스

메일주소 : eunppo@hanmail.net

티스토리 : http://eunppo.tistory.com/

 

 

못쓴 글이긴 하지만 불펌금지인거 아시죠?




****

제가 2003년도에 쓴 소설이네요.

창피해서 다시 읽어보고 싶진 않지만

13년전에 내 열정은 그대로 간직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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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0년 12월 31일




아주 어두운 겨울밤.

매서운 바람과 한송이 두송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초차 알수 없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건 어둠뿐이었고

귀에 들리는건 바람소리와

한걸음 한걸음 내 디딜때 마다 들리는 낙엽밟히는 소리뿐이었다.










한손에는 길다란 나무가지를 잡고 흔들며

혹시나 앞에 바위나 나무가 있지 않나 살펴보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지팡이 대신해 발밑에 무엇이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눈앞에는 몇시간동안 어둠밖에 없었다.

달도 사라지고 별도 사라졌다.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 끼어있었고

그 구름사이에 가끔씩 작지만 반짝거리는 빛 하나가 얼굴을 내 비치기도 했다.

아마 지나가는 비행기인것 같았다.







잠시동안 멍하니 하늘은 바라보다

너무 두려웠다.

어둠속에서 작은 빛하나가 생명줄인것만 같았다.

너무 추웠고

배도 고팠다.

하지만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비행기도 어느새 자신의 갈길로 가버려 자취를 감춰버렸다.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푸드드드득!"





이상한 소리에 놀란 미연은 그만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눈은 분명히 떠있었지만

짙은 어둠때문에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미연은 양손에 잡은 나무가지를 휘휘저으며 소리쳤다.





"저리가!"





있는 힘껏 소리를 쳤지만

너무 놀란 미연의 입에선 작은 신음소리만 날 뿐이었다.








한참동안 숨을 죽이고 소리가 났던 곳이 어딘가를 찾았다.

방향감각을 잃은지도 이미 오래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해서 얻은 상처도 한두군데도 아니었다.

소리를 너무 많이 지르다 보니 목에선 그저 작은 신음소리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 산새가 그녀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날아가는 소리였던것 같았다.

미연은 다시 힘을내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이 가는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게

그냥 발가는대로 마음가는 대로 무조건 걸어갔다.






벌써 몇시간을 이렇게 헤메고 있었다.

그곳이 어딘줄도 몰랐다.

빨리 날이 밝기를 기다렸으나

이 기나긴 겨울밤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날은 더욱더 추워가고 눈보라는 더욱 거세지고

귓가에 들리는 거센 바람소리는 미연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었다.

온몸이 천근 만근같았고

이대로 주저앉으면 얼어 죽을것만 같았다.

이대로 죽을수만은 없었다.

여기저기 상처에선 피가 났다 멈췄다를 반복하고 있고

무릎은 양쪽다 넘어져서 생긴 상처때문에 피가 멈추기 무섭게

다시 넘어져서 피가 또다시 흐르고 있었다.

통증은 없었다.

이미 무감각 해진 상태였다.

정신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눈앞엔 어둠뿐이라 몽롱했고

귓가엔 꼭 귀신울음소리같은 바람소리덕분에

감각을 잃은지 오래였다.

차라리 잘된일인지도 몰랐다.

통증을 느꼈더라면 미연은 더이상 걸음을 재촉하지 못했을것이다.

그자리에 쓰러져버렸을 지도 몰랐다.

어깨까지오는 갈색 웨이브 버리는 공들여 만든 이를 희롱하듯이

나무가지와 이파리등에 엉켜 땀냄새와 흙냄새 나무냄새로 서로 엉켜서

쾌쾌한 냄새만 풍기고 있었고

투꺼운 하얀색 스웨터는 하얀색인지도 모르게 더렵혀 있었다.

갈색 코트는 성한곳 없이 꼭 거지옷처럼 너덜너덜 했으며

색바랜 청바지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었고

군데군데 찢어져 맨살갖에서 나오는 피로 흥건히 젖어 있기도 했다.

검정색 운동화는 그래도 아직까지 제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이틀전에 구입한 새 운동화라 그런지 오랫동안 걸어도

아직 나무가지가 신발창을 뚫고 들어오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갓 스무살처럼 보이는 그녀의 하얀 얼굴은 흙과 먼지로 뒤엉켜있었고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눈물로 뒤범벅이 된 미연의 얼굴은 너무 가엽기 그지없었다.








다시 한 서너시간을 걸었을까.

눈앞에 작은 불빛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미연은 불빛을 만난 반가움에 양손에 잡고 있었던 나무가지를 던져버리고

바윗돌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바로앞에있는 나무도 보지못한채 머리를 부디쳐도

너무 반가움과 기쁨때문에 아픈것도 잊어버렸다.







드디어 그 불빛이 점점 가까워 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그 따스한 불빛이 자신의 몸을 감싸줄거란 행복감에 젖은채

그녀는 정신없이 불빛이 있는 곳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비틀거리며 중심을 못잡고

눈은 이미 흐리멍텅하게 풀려 있었다.

하지만 가야만 한다는 의지때문인지

살아야 한다는 의욕때문인지

그녀는 그 불빛을 향해 달렸다.










드디어 불빛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심장이 멎어 버릴것 같았다.

가슴한 구석에서 뭉클하는것 같았다.

너무 많이 흘려 더이상 나오지 않을것 처럼 보였던 눈물도 보였다.

겉으로 보기엔 50년이 족히 되어보이는 3층 건물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

건물 벽엔 이름모르는 넝쿨로 집밖 가득 감싸고 있었다.

대문은 예전부터 사용하지 않았는지

아주 많이 낡어 제 역활을 하지 못했고

집 주위를 빙두른 나무로 만든 울타리는 여기저기 부서져 있었다.








미연은 반가움에 무조건 집안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계세요? 여보세요! 문좀 열어주세요!"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작은 신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있는 힘껏 문을 두드리는 그녀의 팔은 기운이 없는지

문을 제대로 두드리지도 못했다.

점점 기운이 빠져갔다.

눈앞이 빙빙돌기 시작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고

입안에는 침들이 자신 마음대로 바깥으로 나와 그녀의 입술에서 질질 흐르고 있었다.














"누구요?"










문이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육성이 들렸다.

그녀는 반가움에 미소를 지으며 뭐라 말을 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그녀의 몸만 남자가 연 문안으로 쓰러져 버렸다.

 

 

 

 

 

-2-













"너희들 도대체 뭐하는 인간들이야! 앙!"






고릴라 같이 생긴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소리쳤다.

커다란 원탁에는 고릴라와 맞은편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잔뜩 겁에 질린표정으로 고릴라에게 아무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인채 자리만 지킬뿐이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그 쬐끄만한게 어찌도 빠른지...."






젊은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쾅!"


"집어쳐! 지금 당장 그 계집을 잡아와! 지금당장!"





고릴라는 원탁을 커다란 오른손으로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넵!"







젊은 남자가 놀란눈으로 고릴라를 바라보며 목에 힘을주어 대답했다.

















***









"이제 한시간 후면 19세기가 가고 20세기가 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젊은 여자 아나운서가 새해를 알리는 메세지를 보내고 있었다.

벌써 몇시간째 똑같은 레파토리때문에 이젠 지겹기까지 했다.

선옥은 주머니에서 담배 한개피를 꺼내 물고 담배에 불을 붙혔다.








"야! 담배 좀 그만 펴라. 너땜에 비흡연자인 나까지 간접흡연으로 죽을지경이다."







선옥의 옆자리에서 TV를 보고 있던 경아는 한손으로 코와 입을 막으며 투덜거렸다.

경아의 투정에도 선옥은 묵묵히 담배를 입에 문채 경아에게 작은 미소만 지어보일뿐이었다.






"너땜에 내가 폐암에 걸려죽었으면 좋겠냐?

직접흡연자보다 간접흡연자의 니코틴흡입량이 많다는거 몰라?"






여전히 쇼파에 기대어 두다리는 탁자위에 올려놓고 담배를 피는 선옥은

경아의 투정이 그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을뿐이었다.








노랗게 탈색한 짧은 단발머리에 동그란 얼굴의 선옥은

타이트하게 입은 가죽 옷 덕분인지 선옥의 건강한 그녀의 몸매가 더욱더 돗보였다.

그에 비해 검정색 긴 생머리가 반짝거리는 경아는

비실이 배삼룡처럼 비실거리는 약골이었다.









"야. 근데 왜 미연이한테는 아직까지 연락이 없냐?"









담배연기를 한껏 들이마쉰 뒤 길게 내뿜으며 선옥이 경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그럴줄 알았다. 젠장."


"야! 그러면서 왜 나한테 물어봐?"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역시나잖아..."









괜시리 기분이 나빠진 경아는 선옥을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선옥은 그런 경아를 무시한채 신선을 TV로 옮겼다.








여전히 새해 어쩌구 저쩌구한 아나운서의 말이 계속되었고

지루함을 느낀 선옥은 리모콘을 들어 채널을 옮기려던 차에

생방송중인 뉴스 스튜디오 안에 헤드폰을 낀 남자가 긴급히

하얀색 종이를 여자아나운서에게 건네주었다.






"긴급 속보입니다."





선옥은 들고 있던 리모콘을 제자리에 놓아두고

TV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오늘 오후 5시경 서울 역삼동 모 아파트 놀이터 부근에서

모 아파트에사는 서른세살의 김모여인과 그의 딸 다섯살 최모양이

날카로운 흉기에 찔려 숨진채 발견되었습니다.

주부인 김모여인은 현재 유치원에 다니는 딸 최모양과 함께 아파트 근처 슈퍼에서

장을 보고 오던중에 사고를 당한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목격자는 없으나

최초 목격자인 경비원 한모씨는 오후 순찰중 놀이터에서 쓰러져있는 두 모녀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합니다.

한모씨 증언에 의하면 오늘 밤 새해맞이 파티를 위해 시장에 갔다온다며

김모여인과 최모양이 슈퍼에 가기전에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때의 두 모녀의 모습은 너무나 밝고 명랑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담당 형사의 말에 의하면 김모여인과 최모양의 각 왼쪽 가슴 약 30센티미터가량의 검은색 칼이 꽂혀 있었고

칼날은 검은색이며 용모양의 양각이 새겨져 있는데 가슴까지 들어간 길이는 약 10센티미터 정도로

정확히 심장이 있는 곳을 노려 한번에 숨을 거두게 했다고 밝혔습니다.











다음소식입니다.

역시 오늘 오후 8시경 서울역 근처에서 앞서 말한 내용과 비슷한 살인사건이 났습니다.

서울역 근처에서 한정식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종업원 서른 아홉살의 이모여인은

오후 7시경 식당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서

김모여인과 같은 수법으로 살해당했다고 담당 경찰관이 밝혔습니다.

최초목격자는 서울역으로 갔다 돌아오던 택시한대가 이모여인을 발견해 신고했습니다.

이모여인 역시 왼쪽 가슴에 30센티미터가량의 검은색 칼에 10센티미터가량 찔려있는 상태로 발견되었고

그 칼날에도 검은색이었으며 용무늬 양각이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은 두 사건을 동일범으로 보고 추적중이며

김모여인과 이모여인에게 원한인 있는지에 대해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또한 칼을 시신에 꽂아둔채로 도주한것으로 보아

여분의 칼을 보유하고 있을수도 있음을 염두해 보아

가까운 철공소를 대상으로 사건에 사용된 칼과 비슷한 유형의 칼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경찰은 현재 또다른 피해자가 생길지도 모르니

낯선사람들을 조심하라는 주의사항과 함께

혹시나 사건에 사용된 칼과 비슷한 칼을 보시는 분들은

즉시 가까운 파출소나 112로 연락해 달라는 당부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2000년을 보내는 이 시간에 이런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드리려니

가슴이 아픔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아나운서는 다시 상황을 바꾸어 새해소식에 대해 말을 늘어놓았지만

선옥은 바로 티비를 꺼버렸다.

선옥은 깊이 한숨을 들이 마셨다가 내쉰 뒤 다시 주머니에서 담배한개피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힌 후 깊이 들이 마셨다.









"미연이는 괜찮을까?"








경아가 갑자기 어두운 표정으로 선옥을 바라보며 말했다.







"재수없는 소리하지마!"








선옥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했다.

겉으로는 투박하게 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미연의 걱정을 그 누구보다 많이 하고 있었다.











부미가 한달 전 병원에 입원하기 전 부터 미연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미쳤다고 해야 할까?

혼자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주위에 이상한 혼령들이 나타나 자신에게 말을 걸어 온다고 하며

친구들의 전생이 보인다고도 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미연이 헛소리한다던지 장난을 친다고 믿었었는데

한달 전 부미의 갑작스런 사고에 모두 미연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미연이 정말 괜찮을까?"






경아는 계속 미연이 걱정이 되었는지 근심어린 눈빛으로 선옥을 바라보았다.

선옥은 그런 경아의 시선을 애써 피하려만 하였다.

언제나 강한 모습만 보였던 선옥은 자신의 약한모습을 보이기 싫었기때문이었다.

선옥, 경아, 부미, 미연....

그들은 자매나 다름없었고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성이 다르고 생김새가 달랐지만

그들은 언제나 함께있었다.























***











미연이 눈을 떳을 땐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온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팠지만 머리가 깨질듯이 아픈것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미연은 두통을 억지로 참아가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처음 와보는 낯선 곳이었다.

그러나 언제인가 한번 와 보았던 곳이라는걸 느꼈다.

그때가 언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아주 오래전에 자신이 여기에 한번쯤은 와 보았던 곳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주 오래된 벽시계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는지 6시 58분으로 마추어져 멈춰 있었고

커다란 벽난로와 그 위엔 가족사진으로 보이는 커다란 사진이 매달려 있었고

그 옆엔 수북히 쌓아놓은 장작

그리고 그 옆에는 고풍스런 가구가 나란히 서있었다.

다시 시선을 반대편으로 옮겼다.

거기에는 출입문이 반쯤 열린 상태로 있었고

밖은 흐릿하게 보이긴 하지만 계단이 있는것으로 보아

여기가 2층임을 알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를 보았다.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침대위에 하얗고 깨끗한 시트가 깔려 있었고

언제 갈아 입었는지도 모르는 사이

커다란 잠옷을 입고 햐얀색 이불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벽난로 위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책에서 봤었던 백범 김구선생이 썼던 동그란 검정색 안경을 끼고

2대8 가르마를 곱게 빗어 넘긴 20대 후반의 남자가

한 세살가량 보이는 남자아이를 자신이 앉은 무릎에 앉혀 놓았고

그 남자 옆에는 분홍색 원피스에 긴 검은 머리를 풀고

얼굴에는 홍조를 띈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남자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서 있었다.

어딘가 낯이 익었다.

어디에선가 본듯 한 얼굴들이었다.

어디에서 보았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분명 어디선가 본듯 했다.

그런데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누워있는 이곳도 분명 와 본것 같았지만

여기가 어딘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갑자기 두통이 더욱 더 심해졌다.

머리가 깨질것만 같았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미연은 관자놀이를 힘껏 눌러보았지만

두통은 좀처럼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되....

그러면 괜찮을 꺼야...

심호흡을 하면 편해질꺼야...."







미연은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이 조용히 말했다.

숨을 크게 들이 쉬고 내쉬고....

숨을 크게 들이 쉬고 내수고....












"삐그덕.... 삐그덕...."







갑자기 반쯤 열린 문쪽에서 사람이 계단위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미연은 어젯일을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제....






어.... 제....는......

 

 

 

 

 

 


-3-









고릴라의 사무실에서 나온 젊은 남자는 연신 한숨뿐이었다.





"제길... 내가 동네 북인가?"





젊은 남자는 아직까지 고릴라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인상을 찌뿌렸다.






"조민혁! 나 좀보자."




젊은 남자의 동료인 태석이 그를 불러세웠다.




"왜?"

"할말있다."

"무슨말?"

"나... "

"나 뭐?"





태석은 어두운 표정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릴라 사무실 반대쪽으로 몇 걸음 걸어가 엘리베이터앞에 섰다.

그 다음 내림이라는 단추를 꾹 눌렀다.







"민혁아... 나... 부산으로 내려간다."






엘리베이터가 태석과 민혁의 앞에 멈춰 자신안으로 들어오라며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태석은 고개를 푹 숙인채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민혁도 덩달아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태석은 1층 버튼을 누른 뒤 민혁을 바라보았다.

민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태석을 바라보았다.




"너 장난하냐?"



민혁은 어의 없다는 표정으로 태석을 바라보았지만

태석의 얼굴은 진지함 그 자체였다.

아니...

심각하다고 해야 할까....

아주 심각한 표정이었다.





"민혁아... 나 진짜 부산에 간다."







또 한번의 태석의 말에 민혁은 태석이 지금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걸 눈치챘다.

언제나 자신에게 장난만 치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뻥쟁이 강태석이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닌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거긴 왜? 왜가는데?"

"고릴라가 가란다."

"뭐?"

"그 계집을 놓친 결정적인 이유가 나때문이잖아. 그래서 나보고 꺼지란다."

"...."

"미안하다. 나때문에 너만 고생하게 됐다."

"고생은... 무슨...."

"그래도 나만 아니었다면 그 계집 잡을 수 있었을텐데.... 정말 미안하다."

"미안할꺼 까지야 없는데 너 꼭 죽으러 가는 사람같다. 말투가...꼭...."

"미안하다."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1층에 다다랐고 문이 활짝 열렸다.

태석은 아무말 없이 엘리베이터 밖으로 걸어나왔다.

민혁도 태석을 뒤따라 엘리베이터 밖으로 걸어나오며 태석에게 소리쳤다.








"너 진짜 부산에 가는거 맞냐?"






태석은 뒤를 돌아보며 싱긋 웃더니 건물앞에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민혁은 심란한 표정으로 시야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검은색 승용차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민혁은 다시 뒤돌아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올라감 단추를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활짝 문이 열리더니 민혁은 그 안으로 들어가 5층단추를 눌렀다.

민혁은 엘리베이터 벽에 상체를 기대어 일주일전 고릴라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다시 기억해 냈다.










"그 계집애 말야....

보통 계집애가 아니란 말야...

보통 계집애가 아니라면 특별한 계집애란 말이겠지?

난.... 그 년의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싶어...

그년은 미래도 볼수있고....

전생도 볼수있고....

그리고... 귀신도 볼수 있어....

신내림을 받은 년이야...

보통 무당과는 차원이 달라....

확실히 달라...

그러니깐 일주일 안으로 내 눈앞에 그 계집애를 붙잡고 와!

지금 당장!!"













***








룰루랄라 강남갔던 제비도~

다시 돌아오는데~

룰루랄라~ 날버리고 간 그녀~

언제 돌아올려나~










"시끄러!"

"그냥 노래 부르는건데 왜그래?"

"니 입에서 곰팡이 냄새 난다."








갑자기 선옥의 짜증에 경아는 아무말도 못한채 컴퓨터만 바라보았다.














일제시대때 일본의 고위간부의 별장이었던 집에서

선옥, 경아는 서로 알지 못하는 신경전을 버리고 있었다.







"쪽바리!"

"너 죽는다!"

"췟!"







경아는 언제나 선옥에게 화가나면 그녀에게 쪽바리라는 별명을 불렀다.

그러나 선옥은 그런 별명을 제일 싫어했다.

분명 자신의 할아버지는 일본인이 맞긴 하지만

선옥 자신은 분명 한국인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비록 자신의 피가 일본인의 피를 조금 갖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건 서류상에서 일뿐...

자신은 100% 한국인이라 믿는다.








"넌 좋겠다. 놀고 먹고 자면서도 돈이 남아도니...."

"지랄도 병이다."

"나도 그런 부모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만해라..."





선옥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경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경아는 오른쪽에 귀여운 보조개를 보이며 선옥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러워서 하는말이야."






경아의 미소에 선옥은 속이 메스꺼움을 느끼면서도 더이상 토를 달지 않고 입을 닫아버렸다.

원래 선옥은 말이 적은편이었고 경아는 말이 많은 편이었다.

둘이 만나면 언제나 토닥토닥 말다툼이 있긴 하지만

언제나 참는건 선옥이였다.

하지만 경아입장에서도 경아 자신이 참는다고 생각하고 있을것이다.










"선옥아. 어제 그 뉴스 기억나?

연쇄 살인사건.

놀이터에서 엄마랑 딸이랑 칼에 찔려죽고

서울역에서도 어떤 아줌마가 칼에 찔려 죽은 사건말이야."









경아는 컴퓨터에서 어제 봤었던 뉴스를 찾았는지 급히 선옥을 바라보았다.

선옥은 무슨 특별한 기사거리가 있나 해서 경아 옆으로 갔다.





"그건 왜?"

"어제 3시 반쯤에 또 사망자가 나왔데...."

"어디서?"

"앞에서 죽었던 사람보다 일찍 죽은거 같아.

대림동 A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발견됐어.

이번엔 남잔데 초등학생이야...."

"뭐? 초등학생? 그놈 미친놈 아냐?"

"동일범 같지 않니?"



"당연한거 아냐. 똑같은 수법으로 죽였는데 당연히 동일법이지!

근데 그애는 왜 방학인데 학교는 왜 갔데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 근데 미연이는 진짜 어떻게 된거아냐?"

"..... 불길한 얘기는 그만 하자... 그 애는 명줄이 길어서 돌아올꺼야...."

"진짜 미치겠네... 혹시 무슨일 있는거 아닌지 모르겠어."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근데... 좀 이상한게 있어...."



"이상한거? 그게 뭔데?"


"여기좀 봐.... "







경아는 손가락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가르키며 선옥을 바라보았다.

선옥도 경아의 손가락을 가르치는곳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들려오고 있다.

중간중간에 끼익 끼익거리는 소름끼치는 소리까지 들려와 미연을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두통이 더욱 심해졌다.

머리가 깨질것같이 통증이 너무 심해서 두손으로 머리를 감싼 미연은

반쯤 열린 문을 향해 보이는 그림자에 더욱 긴장했다.








"끼~~~익~~~!"







오래된 미닫이 문이 검은 그림자에 의해 조금씩 열렸다.

두통이 더욱서 심해졌다.

억지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 기억해 내려해도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아 너무 괴로웠고

두통의 통증이 더욱더 심해졌다.

눈앞이 점점 흐려지고

검은 그림자가 문을 활짝 열더니 천천히 미연의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걸어오고 있었다.

두통이 더욱 심해졌고

흐릿하고 보이는 그림자는 점점 미연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





머리가 깨질것 같은 통증에 미연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지고

검은 그림자는 어느새 미연의 눈앞까지 와 있었다.

눈앞이 흐릿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미연은 답답함과

통증때문에 눈을 뜨지 못했다.








"괜찮으세요?"






귓가에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억지로 기억하려 하지 마세요.

그러면 그럴수록 머리가 더 아플꺼에요.

억지로 앞을 보려 하지 마세요.

그러면 그럴수록 앞은 더 안보일꺼에요."








미연은 입을 열어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자신의 몸은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답답함은 극에 치달아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당신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모든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저에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시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시간이 지나면 알수 있을테니깐요.

일단 저에대해 간단히 말씀 드리죠.

나이는 18살입니다.

누나보다 두살 어리죠.

그런데 고등학교는 제가 먼저 졸업했을꺼에요.

일단 미연이 누라라고 하죠.

제이름은 김은겸입니다.

은겸이라 불러주세요."








은겸이라는 남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말만 하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긴 갈색머리에 태양을 전혀 받지 못한듯한 하얀색 얼굴이 그의 차가움을 말해주는듯 했다.

미연은 다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그러다 생각만큼 안정을 찾지 못한채 침대에 누워 두통과 씨름해야 했다.









"내가... 왜....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거지?

내가... 내가 어떻게 여기에 와 있는거야!"

 

 

 

 

-4-














민혁은 천천히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 앉으며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정말 미칠 지경이다.

어떻게 그 산속으로 도망간 계집을 잡아야 할지 걱정이다.

그것도 가까운곳도 아닌....

속리산...

어느근처더라?

기억조차 가물가물 하다.

암튼 원주 지나서 속리산쪽이긴 한데....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밤중이기도 하고 골목길을 다니다 보니 방향감각까지 잃어버린것 같았다.

계집애가 어찌도 차를 잘 몰고 다니던지...

운전경력 2년차인 민혁보다 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조민혁... 현재 나이 28살....

동안이라 실제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긴 하나

그의 주먹은 그 나이의 그 누구보다 강하고

그의 예리함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 뛰어났다.

하지만 그는 방향치라는게 큰 단점이었다.

그래서 친구인 강태석에게 길잡이를 부탁했건만

일이 이렇게 꼬이고 만것이다.











민혁은 담배의 불씨가 필터 가까이 타오르자

담배를 입에서 때어 재털이에 비비며 불씨를 껐다.

그리고 다시 담배 한개피를 주어 들고 입에 문 다음 지퍼라이타를 들고 불을 붙혔다.







"후~"






민혁은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들이 마셨다가 연기를 내 뿜었다.







"일단 오미연이란 계집의 신상명세서를 다시 확인 해야겠군."







그는 혼잣말로 중얼 거리며 자신의 책상서랍속에서 파란색 파일을 하나 꺼내들고

책상위에 펼쳐 놓았다.











이름 : 오미연

생년월일 : 82년 3월 1일 오전 1시 10분 서울 B산부인과에서 태생

가족관계 : 혼자

학력 : 고졸

특기사항 : 최근 한달전 부터 신기가 있어 혼령을 볼수 있고

전생이 보임.

거주지 : 서울시 XX구 XX동 XXXX번지











그녀의 신상명세서는 이게 전부였다.

민혁은 화일을 다시 덮으며 입에문 담배를 재털이에 내려놓은 다음 시계를 바라보았다.

지금 시간은 3시 2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벌써 새해가 밝아왔고

20세기가 열린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렸다.










민혁은 일단 미연이 살았다는 집을 찾아 보기로 했다.


























***














"여기 잘봐..."






경아의 손짓에 선옥은 컴퓨터 모니터 가까이 얼굴을 댔다.






"자세히 봐...."




선옥은 경아가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것은 칼이었다.

네명의 목숨을 앗아간 칼이었다.

흑빛에 반사되는 칼에는 용이 양각되었는데

칼의 길이는 30센티미터 가량이었고

손잡이는 약 10센티미터 가량이었는데

경아의 손가락이 가리킨곳은 바로 손잡이었다.

손잡이는 보통의 식칼의 손잡이와 비슷했고

손잡이를 잡기 쉽게 약간의 굴곡이 있었다.










경아는 선옥이 이해하기 쉽게 손잡이 부분을 확대 시켰다.






"손잡이 끝 부분을 잘 봐....

뭔가가 보이지?

뭐라고 적혀진거 보이니?

숫자가 적혀져 있지?"








경아는 사건에서 사용된 칼을 각각 크기를 확대해

모니터 전체의 4등분이 되도록 마우스를 조작했다.







"각자 숫자가 적혀졌네."






선옥은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는 듯이 모니터를 가르키며 말을 했다.

각각의 칼의 손잡이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적혀져 있었다.

선옥은 그것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첫번째 사건에서 사용된 역삼동 모녀 살인사건의 칼의 손잡이 두개를 확인 해 보았다.

김모여인을 살해당시 사용되었던 칼에는 '121'이라는 숫자가 음각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김모여인의 최모양을 살해 당시 사용되었던 칼에는 '122'라는 숫자가 음각이 되어 있었다.

경아는 어두운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서울역 근처에서 살해된 이모여인이라는 아줌마에게선 '123'이고

초등학생은 '120'이라는 숫자가 손잡이에 음각이 되어 있어."






선옥은 뭔가가 이상하다는 듯 골똘히 생각했다.

뭔가가 이상하긴 하나 분명 그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다 문뜩 머릿속에서

그 죽은 사람들이 죽은 시간들을 다시한번 확인 하게 되었다.







첫번째로 죽은 사람은 초등학생이었다.

신상은 박모군이라고 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사망시간은 오후 3시 30분....

발견시간은 제일 늦게 발견이 되었다.

방학이라 그런지 학교를 오가는 사람들이 없기도 하고

학교 소각장 근처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되었으며

30센티미터 가량의 칼에 찔려 사망했다.

분명 사망시간은 3시 30분....

숫자는 '120'....












그 다음은 일명 역삼동 모녀 살인사건이다.

그들의 사망시간은 오후 5시....

숫자는 어머니는 '121', 딸은 '122'






그 다음은 서울역 근처에서 살해 당한 이모여인...

사망시간은 오후 8시경....

숫자는 '123'






경아는 한참동안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숫자는 무엇을 뜻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선옥이 경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입을 열었다.










"혹시.... 지난번에도 저런 칼로 살해 당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봐.

아무래도 저 숫자 말야....

누군가를 죽일때 얼마만큼 죽였냐를 표시해 놓은것 같거든..."








선옥의 말에 경아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야. 너 미쳤냐?

저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으면 벌써 메스컴에서

연쇄살인 사건이라고 방방곡곡 떠들썩 했을껀데

지금까지 아무말 없다가 지금에야 나오는 소식인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조용하겠냐?

말도 안돼는 소리야!"







경아 자신도 그렇게 말했지만

어쩐지 선옥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경아는 손은 비슷한 사건이 일었나는지에 대한 신문기사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







벌써 침대에 누워 두통을 호소한것이 한시간 가량 흐른것 같았다.

계속되는 두통을 시달리던 미연은 심호흡을 계속해도 통증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언젠가 얼핏 부미에게 들었던 단전호흡법이라는 것을 실행해 보았다.

보통 숨을 쉴때 가슴으로 많이 쉬는데 단전 호흡은 배, 즉 배꼽을 중심으로 숨을 쉬는것이라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단 실행해 보았다.

숨을 삼초동안 숨을 들이 쉬면 배를 내밀고

내쉴때는 삼초동안 천천히 배를 집어 넣으며 내 쉬는 호흡법이었다.

그러니 몸도 편해 지기도 하면서 두통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미연은 아까 들어왔었던 은겸이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가 할말만 무뚝뚝하게 해 놓고선 매너없이 그냥 나가버렸다는게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났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땐 두통이 너무 심해 말도 나오지도 않고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았기때문에

어쩔수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생생히 들렸다.

무엇보다 기분나쁜 말투가 더욱 기분이 나빴다.









"뭐라구? 자기가 나보다 학교는 먼저 졸업했을것이라고?

그래서? 어쩔껀데? 그렇게 나에게 자랑하고 싶었나?

진짜 재수없네. 이름도 재수없고 목소리도 재수없어!"








미연은 천장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순간 미연은 어제 자신이 입었던 옷을 확인해 보았다.

어제는 분명 하얀색 스웨터에다 갈색 코트 색바랜 청바지를 입었는데

지금은 이게 무슨 옷인가?

참으로 말하기 민망한....

음...

한마디로... 어떻게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걸 않입어봐서...

TV에서 가끔씩 나오는데....

부잣집 아줌마들이 아저씨들을 유혹할때 나이트 가운속에 입는

붉은색 실크.... 뭐뭐뭐라고 하던데....






미연이 이옷의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단 붉은색이 아니란 점에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팔과 다리의 상처들을 살펴 보았다.

꼼꼼하게 피를 닦았는지 피가 난 흔적조차 찾아 보기 힘든곳도 있었고

약을 일일이 발랐는지 상처가 난 자리에는 벌써 딱지가 앉아 있었다.










"저 자식이 내 몸을 봤다는 거잖아?"









별로 볼것 없는 몸매(일명 나무젓가락 몸매)를 자랑하듯 몸을 조금 젓히며 말을 했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어의가 없는지 다시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여기에 왔지?"







미연은 어제 있었던 일을 하나 하나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시 두통이 시작이 되었지만 아까보다는 두통이 덜했기 때문에

참을만 했다.








어제는....

2000년 마지막 날이었다.

오전에는 부미의 병문안을 갔다 오다가 누군가가 자신을 잡아

억지로 차에 태우려는 차에 미연은 쥐새끼 같이 빠져나와 자신의 차로 뛰어들어 도망간것 까지 기억이 났다.

그가 누구인지는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왠지 낯이 익었다.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었지만 그가 누구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과 않좋은 일에 엮인 사람인것 같아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삐그덕... 삐그덕...."








계단에서 삐그덕 소리가 났다.

 

 

 

 

 


-5-








"조실장. 나좀보게."


민혁이 오미연에 대한 서류를 훑어보고 있을때 갑자기 고릴라가

그의 사무실로 들어와 무뚝뚝한 목소리로 민혁을 불렀다.




"무슨일이십니까? 사장님?"



민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고릴라에게 인사를 하였다.

고릴라는 아무말 없이 사무실 안에 있는 쇼파에 걸터 앉으며 민혁을 기분나쁜 눈빛으로 쳐다 보았다.

그의 시선이 이상함을 느낀 민혁은 시선을 떨구며 그의 눈빛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민혁은 더듬거리는 그의 말투는 목소리까지 바닥을 설설 길것처럼 작았다.

고릴라는 그런 민혁을 전혀 신경쓰지 않은 듯 탁자위에 놓인 신문에만 열중 할 뿐이었다.

그러다 작은 컬럼하나를 다 읽은 고릴라가 다시 시선을 민혁을 향했다.

민혁은 그자리에서 아무말 없이 고개만 떨군채 고릴라의 대답만 기다릴 뿐이었다.

고릴라의 시선은 아침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민혁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평소보다 눈빛이 이상하다는건 뭔가 불길한 징조를 말하는 것이라는것을

몇년간 고릴라 옆에서 일하다 얻은 하나의 지식과 같은 것이었다.

고릴라는 다시 시선을 신문에다 옮겼다.

그의 주름진 이마에선 깊게 패인 상처가 그의 인상을 더욱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커다란 얼굴에 거무스름한 그의 피부는 꼭 달 표면을 연상하는 듯 했다.












올해 42살인 조덕만는 20년 가까이 선우그룹에 몸담아 오며 여러가지 실연을 겪었고

그러면서 그의 주름살에는 한숨으로 가득했다.

고릴라는 연신 한숨만 쉬며 신문만 바라볼뿐 그 어떤 말을 하지 않았다.

신문을 반쯤 읽었을 때쯤 시간은 30분이나 흘러있었다.







"조실장, 여기 좀 앉아보게."







고릴라는 신문에서 눈을 때지 않은채 민혁은 자신의 맞은 편에 있는 쇼파에 앉으도록 지시를 내렸다.

민혁은 긴장하며 고릴라가 앉은 자리의 맞은 편에 조용히 앉았다.






"태석이 일때문에 걱정이 많지?"






예상외로 고릴라는 조용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평상시와는 전혀 다른 말투였다.

그런데 민혁은 태석의 일때문에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니었다.

뻥쟁이 강태석을 신경쓸 여유조차 없었던 그는 고릴라의 물음에 왠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태석이는 왜?..."





"아무래도 윤부장 대신 태석이 큰집으로 가야 우리 일에 차질이 없을 것같다.

윤부장이 지난번 나이트 폭행사건에 연류되어 큰집에 들어가게 되면

최소한 일년은 살아야 할텐데...

그러면 우리의 일에 차질이 상당히 커진다는거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

그래서 태석이 윤부장 대신 큰집에 갔다 와야 할것 같다.

너와 태석이 가까운 사이인걸 아는데 이번 우리일이 큰 차질을 빗지 않을려면

이번 태석의 희생을 가만해야 할것 같다.

그러니 이해 바란다."








고릴라는 자기가 할 말만 주섬주섬 꺼내 놓은 뒤 바로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갑작스런 고릴라의 방문과 고릴라의 말때문에 민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기만 할 뿐이었다.























***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부미야... 난... 난...그냥... "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난처한줄 알기나 하는거야?"

"미안해... 사실..."

"사실? 사실뭐!"




"난 그냥... 내 눈앞에 니가 그러는게 보였기 때문이야.. 그런거 뿐이야...부미야...

나... 너무 미워하지마...

난 그저 니가 걱정이 되서 그런거야....

정말이야...

정말이라구...."





미연은 그자리를 주저 앉으며 억지로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렸다.

그런 미연을 따가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부미 눈가에 역시 눈물이 가득했다.

하지만 부미는 그 누가 보지 못하도록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절대 눈물같은건 흘리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고 또 다짐을 해홨던 그녀였다.

과거는 과거일뿐이라며 힘든 어린시절을 악으로써 지워버렸던 그녀에겐

눈물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하지만 부미는 얼마전 미연이 자신에게 불연듯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부미야...

니 옆에 있는 여자 누구야?

니 동생이니?"




갑작스런 미연의 질문에 부미는 어리둥절했다.

선옥이네 집에서 지낸지 석달가량 지났을까?

경아, 선옥, 미연, 부미.

이렇게 넷이 선옥의 집에서 지낸지 석달째 지나고 있었다.

선옥과 경아는 외출중이었고

미연과 부미는 TV를 보고 있던 중 미연이 갑자기 말도 안돼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지금 이 저택에는 미연과 부미 딱 두명밖에 없었다.

부미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누구?"




"니옆에 여자애..."



"여자애?"






출생 한달밖에 안된 부미는 부모님에게 버림을 받아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돌이 갓지나 지금의 부모님에 의해 입양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비밀을 현재의 양부모와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에겐 동생같은건 없었다.

자식이 없는 양부모에겐 오직 자신만이 자식뿐이었다.








"뭐? 뭐라구??"


부미는 놀라는 표정으로 미연을 바라보았다.




"니 옆에 있는여자애 말야... 안보이니?"




미연은 태연스럽게 웃으며 부미의 옆자리를 가르키고 있었다.




"야. 오미연! 너 무슨 장난을 그렇게 하니?"



부미는 어의 없다는 표정으로 미연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부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외동딸이야... 너 왜그래?

도대체 누가 보인다고 그래?

너 진짜 왜그래?"





부미는 온몸이 부르르떨렸다.

왠지 소름이 끼치는듯 주위의 기온이 점점 낮아져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등골에 식은땀까지 흐르는듯했다.







"부미야... 난 정말 보여....

니 옆에 있는 여자애말야...

안보이니?

머리가 길고....

너랑 얼굴이 비슷하게 생겼는데....

진짜 안보이니?"





부미는 다시한번 주위를 둘러보았으니 미연과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것을 다시한번 확인 할 수 있었다.




"야! 너 정말 왜그래?

장난하는거야?"




미연이 장난하는 것으로 느낀 부미는 그녀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그러나 미연의 눈빛은 거짓말을 하는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진지해 보였다.






"부미야... 난 그냥 보이는데로 말한것 뿐이야..."



그 후 미연은 자주 부미와 단 둘이 있을때 부미의 옆에 여자애가 있다는 말을했다.

그때마다 부미는 강하게 부정하였다.

미연의 눈에는 보이지만 부미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점점 흘러 갈수록 미연의 이상한 말은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왜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이 않보이냐며 되려 화를 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선옥과 경아도 함께 있을때 조차 부미의 옆에 여자애가 보인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곤했다.










미연은 어느덧 눈물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너는 미쳤어!"


"그러지마... 부미야... "


"너는 미쳤다고!"


"화내지마... 제발... 제발 그러지마...."




미연은 또다시 눈물을 흘리며 부미앞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부미는 그런 미연을 보는 것 조차 기분이 상했다.

그냥 화나 치밀러 올랐다.




"내가 너때문에 얼마나 화가나고 힘이드는줄 아니?"




한참 후 부미는 화를 가라앉히며 최대한 부드럽게 최대한 친근하게 미연에게 물었다.




"미안해... 그런데... 난 거짓말 하지 않았어....

제발... 내 말을 믿어줘....

정말이야... 그런데... 부미야....

니 옆에 있는 그애가.... 자꾸... 널보며.. 웃어....

자꾸... 이상한 표정을 하며... 널보며 웃어...

부미야.... 조심해..."






말도 안돼는 미연을 말을 일단 들어보자는 듯 부미는 억지로 화를 참으며

미연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부미야....

어제... 나... 이상한거 봤어...."



미연은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채 말을 계속 이었다.


"니가 어제... 거실 쇼파에서 낮잠잘때....

나.. 그때... 이상한거... 이상한거...봤어...."




부미는 두려운 눈빛으로 미연을 바라보았다.

미연의 몸이 갑자기 심한 오한이 오는지 부르르떨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금 몹시 두려워 하고 있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니 옆에... 있었던... 여자애가 말야...

그때는 보이지 않았어... 그런데....

내 눈앞에... 이상한게 보였어....

꼭 사진들이... 지나가는 것처럼....

이상한... 화면들이 보였어...."





미연은 울음을 겨우 멈추며 눈물을 닦아 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두려운듯 손을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 역시 떨리기는 마찬가였다.

너무 두려웠는지 말을 잊는것 조차 힘겨워 보였다.

그러나 부미는 미연을 말을 가로막지 않았다.

일단 들어보기위해서 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미연의 말에 이끌리는 듯 했기때문이다.

미연역시 힘겨워 하면서도 말을 계속 이었다.

꼭 신들린 사람처럼 주절주절 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두 어린아기가 있었어...

그... 두 아기는 아주 갓난 아기인것 같아....

아주... 아주....작고... 예쁜 아기야....

둘이 똑같이... 아주 똑같이... 생겼는데...

그애들은... 추워보였고... 배고파 보였어....

그리고...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냥... 둘만 남아... 있어....

그런데 어떤 남자가... 그 아기들을 발견했어....

한 아기는 자신이 데리고 가고.....

또... 한 아기는... 병원으로... 데리고 갔어....

한 아기가... 아픈가봐....

아무것도... 먹지못해서.... 많이... 아픈가봐....

그리고...

니 옆에... 자주 보였던... 여자애가 보였어....

아주... 가냘프고.... 약해보였어....

그리고.... 중학생인듯.... 교복을 입고 있었어...

우리 중학교... 교복이랑 같은거야....

명찰도 우리꺼랑... 같은건데....

이름은 보이지 않아....

그애는.... 아주 큰... 어디서 본듯한집인데...

꼭... 니네집 같았어....

암튼... 그애가... 그 집앞에 있었어...

그냥...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어....

그 애는... 그냥... 주위만 두리번 거리다가....

집으로 돌아가려는....것... 같았어....

그런데.... 골목에서... 갑자기 나온...

차에 그애는 온몸이 붕뜨더니....

차위로... 그냥.... 떨어졌어....

피가 많이... 나는거...같아....

많이... 아픈가봐....."






미연은 아까보다 더한 오한을 느끼는지 더욱 심하게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부미도 미연의 말에 그냥 그 자리를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데.... 부미야.... 그애가... 니 옆에서... 웃고 있어...

보이니?... 보이니 부미야?....."





부미는 주위를 다시 두리번 거렸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미연은 계속 뭐라고 주저리 주저리 거렸지만 부미는 그말이 무슨말인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니....

알아들었지만 강하게 부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귀를 막았지만 미연의 목소리는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그만하라며 소리를 쳤지만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부미야....

그애... 진짜... 너랑 똑같이...생겼다....

지금까지 흐릿하게... 아주...흐릿하게...보이더니...

지금은 아주 선명하게... 보여...

너랑...진짜... 똑같이...생겼어...

보이니? 부미야?

진짜... 진짜 똑같아.

그때 입었던... 교복을... 아직까지 입고있네....

아직도.. 그학교에 다니나봐....

이름이...

이름이 보이는데....

... 정... 미.....

강.... 정.....미.....

근데... 넌...연씨잖아... 연부미...

근데... 그애는... 강씨네....

너랑... 똑같이 생겼는데....

난...진짜... 니동생인줄 알았는데....

아닌가보네....

그애는 강씨고.... 넌.... 연씨니깐......

근데... 그애가 자꾸... 널보며 웃는다....

웃는 모습이... 너랑 진짜...똑같아...."









미연은 혼자서 실실 웃으며 부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부미는 혼자 괴로워 하며 그자리에 쓰러져 기절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웃으며 킥킥 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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